안녕하세요 해를품은수달 수다리입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축구 레전드 선수에 대해 글을 써볼까 하는데 그 선수는 바로 박지성입니다.
프로 입단 이전
박지성 선수는 어린 시절 야구선수가 꿈이었고,
전남 고흥에서 수원 산남초등학교로 전학 오면서 야구부에 들어가려 했지만 4학년이 되어야 입단시켜준다고 했지만 얼마 후 다시 수원의 세류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야구부는 없고 새로 창단된 축구부에 들어가면서 그의 축구인생은 시작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차범근 축구상 장려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안용중학교로 진학을 했고 중학교 시절 별 볼일 없던 팀을 도내 상위권으로 도약을 시켰습니다.
이후 수원공고로 진학을 했지만 왜소한 체격과 평발이라는 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시 감독이었던 이학종 감독은 박지성의 피지컬을 보완하기 위한 훈련을 많이 시켰고
이때 기본기를 다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박지성 선수의 부모님이 개구리 즙을 먹이는 등 정성을 많이 기울였고
그 정성 덕인지 158cm였던 키가 170cm까지 자라게 됩니다.
수원공고가 고교축구에서 두각을 내는 팀도 아니었고 박지성 선수 또한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기에 졸업 이후
K리그나 대학팀이 없어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학종 감독의 도움으로 명지대에 진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명지대 김독이었던
김희태 김독은 당시 축구부 신입 선발이 끝난 상황에서 박지성 선수를 추가하기 위해
테니스부를 찾아가 T.O를 빌려 입학시킨 것 또한 유명한 일화입니다.
명지대에서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 던 2000 시드니 올림픽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던 중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어 바로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교토 퍼플 상가

각 급 국가대표에서 여러 포지션에서 뛰던 박지성은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에서 영입 제의를 받게 되고 정식 입단을 하며 당시 최연소 해외진출 선수로 기록되게 됩니다.
2002년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고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당시 FIFA 랭킹 4위 포르투갈을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내는 등 4강 신화를 이루어내며 큰 인기를 얻습니다.
대회 후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진출시키고 천황배 우승을 이끌어냅니다.
천황배는 1월 1일에 열리지만 결승까지 올라갈 것을 생각하지 못한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 선수와의 계약이 12월 31일에 만료되었지만 박지성 선수는 무보수 출전을 단행하였고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에 동점골에 힘입어 2-1로 역전 우승을 하게 됩니다.
우승 이후 박지성 선수는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었지만 교토 퍼플 상가의 구단주는
절름발이가 되어도 받아 줄 테니 언제가 반드시 돌아와 달라고 했습니다.
PSV 에인트호벤

2002 시즌 이후 히딩크 감독이 있는 네덜란드의 강호 PSV 에인트호벤으로 팀을 옮기게 된 박지성 선수는
초기 홈팬들에게 조차 비난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냅니다.
히딩크 감독은 홈팬들에게 조차 야유를 받는 박지성 선수를 배려하여 원정 경기에서 주로 출전을 시켰고
힘들게 1년여를 버틴 끝에 어느새 활약하는 윙어로 자리 잡게 됩니다.
03-04 시즌 중반부터 활약을 보이던 박지성 선수는 어느새 자신을 야유하는 팬들마저 자신을 응원하는 응원가를
만들 정도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그 백미는 04-05 시즌 철의 수비를 펼치던
AC밀란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유럽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은 1차전에서 이미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상태였고 당시 AC밀란은 월클 선수들이 즐비한 팀이었습니다.
특히 카푸-스탐-네스타-말디니라는 월클 수비수들을 상대로 멋진 골을 뽑아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며 홈에서 3-1로 승리를 하고 1,2차전 합계 스코어 3-3을 만들었지만 원정 다득점으로 인해 AC밀란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고
결승전에서는 리버풀이 이스탄불의 기적을 만들어 내며 리버풀의 우승으로 챔피언스리그는 마무리됩니다.


당시 대회 리옹과의 8강 2차전에서부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들었던 그는 잉글랜드의 리버풀, 첼시
스페인의 데포르티보 등 여러 클럽에서 영입 소문이 나왔지만 결국 잉글랜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저는 이 사진이 합성인 줄 알았습니다.
대한민국 선수가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유에 입단을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많은 해외축구 팬들의 시작이 이때부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입단 당시 워크퍼밋에 문제가 있었는데 워크퍼밋이 나오려면 2년간 국가대표 경기에서 75%를 뛰어야 했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부르지 않았던 경기들이 있어 박지성 선수는 64%밖에 못 채웠고 마지막 방법으로 유명 축구인 3명의 추천서가 필요했는데 원소속팀의 거스 히딩크, 이적팀 감독 알렉스 퍼거슨, 그리고 마지막으로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보고 감명받은 요한 크루이프가 써줘 무사히 워크퍼밋을 받아 맨유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입단 당시만 하더라도 아시아 마케팅용 유니폼 팔이 선수라는 이야기와 라이언 긱스의 백업용으로 영입했단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맨유 입단 당시만 해도 공격적인 윙어로 스피드와
특유의 체력과 활동량으로 무난한 데뷔 시즌을 보냈습니다.
특히 반 니스텔루이, 웨인 루니와 좋은 호흡을 보였고 이타적인 플레이로 팀원들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다소 투박한 볼 트래핑과 크로스, 슈팅 등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맨유에서 월큽급 공격수 반 니스텔루이, 웨인 루니, 호날두, 테베즈 그리고 사하, 베르바토프, 치차리토와 같이 뛰며 점점 크로스와 슈팅, 볼 트래핑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특히 공격적인 호날두와 반대편에서 수비적인 윙어로써 팀의 균형을 맞춰주었고 특유의 오프 더 볼 능력을 보여주며 공격과 연계 부분에서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중요한 경기에서는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자주 중요한 역할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피를로를 지워버린 것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피를로는 경기당 평균 패스 개수가 80개에 육박했지만
박지성이 피를로를 전담 마크한 경기에서는 30개도 안 되는 패스만을 성공시켰습니다.
박지성 선수는 자신의 선수 생활 절반 정도를 최고의 클럽 맨유에서 보내며
맨유에서만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포함해서 13개의 우승을 했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점점 선발에서 제외되는 횟수가 늘자 Q.P.R로 이적을 했습니다.
그 후 다시 한번 네덜란드의 PSV로 임대 이적 후 은퇴를 하였습니다.

박지성-루니-호날두의 역습에 의한 골은 아직도 역습에 표본으로 많은 자료에 쓰이기도 합니다.
박지성 선수의 최고의 골 TOP 10
순서와 순위는 상관없이 나열해 보았습니다.

칼링컵 8강에서 버밍엄 시티에게 맨유 입단 후 첫 득점

챔피언스리그 4강 AC밀란을 상대로 득점

아스널을 상대로 혼자 단독 드리블 질주 후 득점

울버햄튼을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멀티골을 만들며 승리한 득점

라이벌 리버풀을 상대로 헤더 득점 이후 엠블럼 셀레브레이션을 펼진 득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리스를 상대로 득점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 상대로 득점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를 상대로 득점

이건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본을 상대로 득점 후 산책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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