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해를 품은 수달 수다리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중에 반지의 제왕, 테리우스, 판타지 스타 이 3단어만으로도 떠오르는 선수 안정환 선수에 대해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 입단 전
방송을 통해 많으신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수려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 다르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 얹혀살며 10번이 넘게 이사를 할 정도로 가난하게 자란 그는 "축구부에 들어가면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축구부에 들어가면서 축구선수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 몽드'에서는 "만화에서 나오는 로마 왕자 같은 외모의 안정환은 생김새와 다르게 춥고 배고픈 유년기를 보냈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의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를 하게 되었지만 다행히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안정환은 다른 학교에 스카웃이 되어 축구선수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계속되는 선배들의 구타와 배고프고 피곤했던 몸을 못 이겨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축구부 쉬는 날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사판에 나가 노가다를 했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아주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로 입단한 선배들을 보며 축구선수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대우 로얄즈로 프로에 입단하게 됩니다.
대우 로얄즈와 부산 아이콘스
1998년 데뷔하자 말자 그해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뽑혔고, 1999년에는 K리그 24경기에서 14골을 기록하며 사상 최초로 비우승팀 MVP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안정환은 리그에서 MVP나 득점왕을 기록한다면 유럽으로 진출을 추진한다는 계약을 대우 로얄즈와 맺고 있었는데 대우가 파산을 하면서 현대산업개발은 안정환의 가치를 보고 인수를 하며 부산 아이콘스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이때 대우 로얄즈와 맺었던 계약은 무효하고 현대산업개발에서 주장을 하여 결국 안정환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은퇴를 하겠다는 초강수를 두었고 이에 현대산업개발은 반 시즌을 더 뛴 뒤 이적을 추진하기로 합의를 봅니다.
이후 안정환은 2000년 반 시즌 동안 총 20경기에서 10득점을 기록 후 해외 진출을 추진합니다.
부산 사람으로 대우 로얄즈를 좋아했던 저는 안정환의 이적 소식을 접하고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ㅠ
이탈리아 세리아 AC 페루자
안정환은 스페인 라리가 소속의 라싱 산탄데르와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이탈리아 세리아의 AC 페루자가 중간에 안정환을 낚아채갔습니다.
그리고 이 임대 이적이 안정환의 커리어를 결정적으로 망가트리게 됩니다.
당시 페루자에서는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를 2년 임대로 쓰며 나카타의 마케팅 효과가 상당했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경기날에는 일본인 수백 명이 직관을 하러 왔고, 유니폼과 페루자 관련 상품도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축구 구단주들에게서 종종 보이는 인물상이긴 하지만 페루자의 가우치 구단장은 기행과 돈독의 대표적인 인물로 한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축구팬에게도 악명이 자자한 인물입니다.
가우치 구단장은 얼굴도 잘 생겼고 축구도 잘해서 K리그에서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는 최고의 스타였으며, 한국의 경제력과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대우자동차의 스폰서까지 생각하면 임대 선수로서 안정환은 최고의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IMF로 인해 대우그룹은 도산을 하게 되었고 스포서 업체인 대우자동차 또한 해외 매각설이 나돌던 때였으며 일본과 달리 아직 한국 축구팬들은 위성방송과 해외 축구가 본격적으로 도입이 되지 않아 크게 관심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저 또한 당시 신문을 통해 안정환의 이적 소식을 알게 되었고 안정환 선수의 세리아 시절의 활약상은 신문의 스포츠 페이지에서 보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하물며 지금처럼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관광으로 유럽을 간다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카타 때와는 달리 안정환과 페루자 관련 상품이 팔리지를 않아 감독에게 안정환을 쓰지 말라고 지시를 했고 결국 부상자로 자리가 날 때까지 안정환은 처음 한 두경기만 잠시 뛰고 경기를 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4라운드에 드디어 교체 출전한 안정환은 이후 계속 출전시간을 늘려가며 포워드로 쓰던 안정환을 다시 원래 포지션은 미드필더로 돌리며 투톱 아래에서 위치한 그는 4골과 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3번의 MOM과 2번의 주간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임대 신분으로 팀의 에이스인 10번을 달게 되었고 안정환의 완전 이적을 현대에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안정환 애매한 임대 신분보다는 완전 이적을 환영하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이는 무산이 되었고 다시 임대 신분으로 어정쩡한 출장시간만을 가지다가 20라운드와 21라운드에서 폭풍 활약을 하며 2경기 연속 MOM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안정환의 2002년 월드컵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을 선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K리그를 점령하고 세리아에서도 좋은 활약을 하는 안정환을 왜 선발로 안 뽑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과 밀당을 하며 안정환 길들이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아마 당시 홍명보 선수와도 밀당을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렇게 히딩크호에 완벽히 녹아들자 한일 월드컵 시작 전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어마어마한 골을 넣게 됩니다.
진짜 이골을 보고 우리나라 선수 중에서도 저런 골을 넣는 선수가 있구나라고 생각한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직까지 제 기준에서는 이 골이 대한민국 대표팀 골 중에 가장 멋진 골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조별예선을 시작한 대한민국은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황선홍-유상철의 연속골로 월드컵 사상 첫승을 거두었고 2차전 미국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미국전 전반 21분경 공격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황선홍 선수가 헤더를 하다가 상대 선수와 부딪혀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지혈을 하기 위해 라인 밖으로 나간 사이 10대 11의 숫적 열세인 상황에서 24분경 미국의 매티스 선수에게 한골을 내주고 맙니다. 당시 중3이었던 저는 어린 마음에 미국이 엄청 치사했다고 생각했던...ㅋㅋ
전반 39분경 붕대투혼 황선홍 선수가 PK를 얻게 되지만 이을용 선수가 실축을 하며 전반은 끝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후반전 득점을 계속 노리던 대한민국은 후반 32분 프리킥 상황에서 이영표의 프리킥을 안정환이 헤더로 연결시키며 안정환의 월드컵 첫 득점을 성공시킵니다.
당시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을 뺏어간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를 저격하는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며 기세를 올린 대한민국은 후반 종료 직전 PK를 실축한 이을용 선수의 완벽한 컷백을 최용수 선수의 독수리 슛으로 날리며 경기는 1:1로 마무리 되게 됩니다.
이후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박지성 선수의 멋진 득점으로 당시 FIFA 랭킹 4위인 포르투갈을 1:0으로 승리하고 사상 첫 월드컵 16강을 이루어 냅니다.
16강은 빗장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연장까지 가는 혈투가 이어집니다.
경기 초반 설기현 선수가 얻어낸 PK를 안정환 선수가 실축을 하고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아 김태영 선수는 코뼈가 부러지고 전반 18분에 이탈리아의 공격수 비에리에게 헤더 골로 기선제압을 당하며 힘든 경기가 계속됩니다.
1:0으로 경기가 끝날 줄 알았지만 후반 42분 설기현 선수의 동점골로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안정환은 대한민국의 영웅이 됩니다.
전반 초반 자신이 실패한 PK를 만회하기 위해 매 순간 전력으로 달려왔던 그는 다시 한번 이영표 선수의 크로스를 받아 미국전과 비슷한 헤더 골을 만들어냅니다.
당시 월드컵에서는 서든데스 규칙인 골든골 제도가 있어 이 득점으로 대한민국은 8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아마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이 월드컵 역사상 마지막 골든골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경기 초반 PK를 실축한 부담과 득점을 만들어낸 후의 안도감, 8강 진출이라는 기쁨을 셀레브레이션 후 쓰러지며 눈물을 보이던 안정환 선수의 모습은 당시 TV 광고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8강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대한민국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전후반, 연장에서도 승부를 못 내고 승부차기에서 당시 라리가의 베티스 소속의 최정상급 윙어였던 호아킨 실축으로 4강까지 진출합니다.
사실 8강은 거의 경기 내내 스페인에게 끌려갔던 경기였다고 도 볼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선수들의 투지와 정신력으로 이겨낸 경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4강에서는 전차군단 독일을 상대로 월클 미드필더 발락에게 실점을 하고 이천수 선수의 득점과 같은 슛을 야수 올리버 칸이 막아내며 16강, 8강 연속으로 연장 혈투를 치르며 떨어진 체력으로도 선전을 했지만 스코어 1:0으로 결승 진출이 좌절되고 3,4위전 역시 체력 문제를 보이며 터키와의 경기에서는 월드컵 최단시간 실점을 기록하며 3:2로 2002년 월드컵은 끝이 나게 됩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예선 첫 번째 경기였는 당시 최고의 공격수로 주목받던 아데바요르가 있던 토고와의 경기.
전반 31분 토고의 쿠바자에게 선취골을 내준 대한민국은 후반 9분 이천수 선수의 그림과 같은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내고 후반 27분 안정화 선수의 특유의 터닝슛으로 2:1 역전을 하며 대한민국 원정 월드컵 첫승을 기록합니다.
조별예선 2차전에서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초반 앙리에게 실점을 했지만 당시 유럽 최고의 클럽 맨유 소속의 박지성 선수의 득점으로 1:1로 무승부를 거둡니다.
그리고 마지막 3차전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승리를 해야 했던 스위스와의 경기는 전반 23분 수비수 센데로스에게 헤더로 실점하고 후반 32분 프라이에게 오심 논란이 있었던 실점을 하며 2:0으로 지며 조별예선 탈락을 합니다.
당시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어 오프사이드가 아닌가 했지만 주심 엘리손도는 득점으로 인정을 하며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하물며 대한민국 방송 3사 MBC, KBS, SBS 중 유일하게 SBS의 신문선 해설위원만 오프사이드가 아니다고 발언을 해 역적 취급을 받으며 해설위원 자리에서 물러났을 정도였습니다.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
안정환 선수는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에 뽑히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대표팀의 자리를 어느덧 성장한 후배들에게 내주며 모든 경기를 벤치에서 경기를 보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마지막 16강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이동국 선수 대신 안정환 선수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원정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정환 선수가 나와 월드컵에서 4번째 골을 기록했다면 아직까지도 아시아 선수 최다 월드컵 득점자에 이름을 남겼을 수도 있지만 너무 아쉽습니다.
참고로 안정환과 박지성이 기록한 아시아 선수 월드컵 최다골인 3골 기록을 깬 선수는 일본의 혼다 게이스케입니다.
혼다 게이스케는 4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저니맨 생활의 시작
안정환 선수는 200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탈락시킨 주범으로 취급을 받으며 페루자에서는 이탈리아로 돌아오면 마피아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하며 안정환을 방출하고 급료를 안 주겠다는 소리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미 월드컵 스타가 된 안정환의 몸값을 기존의 10배 이상이 오르자 페루자의 가우치 구단주는 사과와 해명을 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안정환은 이탈리아의 고급차와 집은 훌리건들에게 박살이나 돌아가기를 두려워했고 안정환의 에이전트의 안종복은 이제 곧 임대 기간이 끝나니 자기들끼리 이적을 하기로 결정을 해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입단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페루자는 부산 아이콘스와의 임대계약 때 우선협상권을 가지고 있어 완전 이적을 행하였고 이후 프리미어리그의 볼튼으로 이적을 단행했으며 안정환의 이적이 블랙번과 볼튼 두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이 두 곳 밖에도 파리 생제르맹,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세계 여러 클럽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신뢰도를 잃어버리며 모든 관심은 사라져 버렸고 블랙번 역시 페루자가 부담스러워 히딩크의 추천서도 있었지만 워크퍼밋이 안 나온다는 핑계로 이적이 무산되어버리고 맙니다.
안정환 이적이 무산되자 이적료를 못 챙겨 화가 난 가우치 구단주는 FIFA에 이를 제소하게 되고 FIFA는 페루자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도 부산 아이콘스와 대한축구협회는 안정환을 도와주기는커녕 손가락만 빨고 있었고 부산 아이콘스는 안정환 소유권을 일본의 스포츠 매니지먼트에 150만 달러에 팔아버립니다.
유럽에서도 이 사건을 안느 게이트라 불리며 가우치 구단주는 악명을 떨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안정환은 36억 원의 빚이 생기게 되며 일본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PM에서 부산 아이콘스와 페루자에게 돈을 더 주며 완전 소유권을 가지게 되며 일본의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임대를 보내고 광고와 예능 출연으로 100억 이상을 수익을 창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 리그앙의 FC 메스,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는 뒤스부르크에서 선수 생활 후 다시 K리그로 복귀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산 아이파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의 다롄 스더에서 선수 생활을 끝마치게 됩니다.
선수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각종 예능 출현과 MBC에서는 축구 해설위원을 하고 있으며 현재 P급 지도자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방송에서 보긴 했는데 현재는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SBS 집사부일체 안정환 편에서 이제 축구계로 돌아갈 생각도 있다고 했으니 뭉쳐야찬다 같은 조기축구회 감독이 아닌 진짜 감독 안정환을 볼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안정환에 대한 한마디(국뽕에 빠져봅시다!!)
거스 히딩크(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왜 안정환을 교체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이탈리아 골대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를 왜 빼겠는가?"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페루자 시절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MOM을 차지했을 때)
"마치 필리포 인자기 같았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한국 선수들이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특히 미드필드와 공격 쪽에 좋은 선수가 많은 것 같다. 안정환은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선수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마르코 마테라치
내가 인테르의 첫 훈련에 들어갔을 때 인테르의 코치진이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은, 내가 아니라 전 동료 안느의 계약 사항이었다. 나 또한 그와 플레이하길 바라고 있다.
세르세 코스미(당시 페루자 감독)
안느는 굉장한 재능을 가진 선수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를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많은 기회를 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파비오 그로소
안정환이 방출된 후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는 영리한 선수였고, 우리는 구단주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상대팀 선수로서 우리를 상대로 중요한 골을 넣었지만 그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 수줍음이 많은 선수였지만, 우리는 안정환을 훌륭한 축구선수호 생각했다.
토토 스포르트지, 비토리오 오레시아 기자
페루자는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 의식이 지배하는 팀이다. 분명히 그런 부분이 안정환을 궁지로 내몰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한국에서 온 유일한 세리아 선수 꼬레아노 안을 훌륭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조반니 트라파토니
테크니션... 그중에 판타지 스타 성향을 가진 선수를 여럿 봤다.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팀 플레이에 맞춰지는 단순한 플레이에는 호흡을 맞출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판타지 스타는 감독이 활용할 줄 모르면 미움을 받거나,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국과 경기를 했을 때 AC 페루자에서 뛰고 있다는 안느를 봤다. 우리 팀의 델 피에로와 무척 닮았더라. 그러나 저 선수를 다룰 만한 감독이 있는지 모르겠다.
호나우두
스코틀랜드전에서 두 골을 넣었던 긴 머리 선수가 인상 깊었다. 그의 두 번째 슛인 로빙슛은 정말 일품이었다.
프란츠 베켄바워(2002년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이후)
안정환은 정말 헌신적인 선수다. 팀의 공수 밸런스와 볼 흐름을 위해 경기 내내 정말 헌신적인 플레이를 했다.
펠레
안정환은 내가 본 역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요한 크루이프를 보는 듯했다.
움베르토 코엘류 (전 대한민국 국대 감독)
안정환은 전형적인 판타지 스타 성향의 선수이다. 내게 기회가 있었다면 난 그를 활용할 수 있었다. 다음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안정환을 어떻게 활용하는 데에 한국의 월드컵 운명이 달려있을 것이다. 그는 마치 후이 코스타와 같은 플레이를 할 줄 안다. 나에게 가장 욕심나는 한국 선수를 뽑으라면 그건 단연 안정환과 이관우다. 그들이 포르투갈 출신이라면 이미 그들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티에리 앙리(EPL에서 뛰는 한국 선수 중 누가 인상적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현재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안정환이 기억에 남는다. 안정환의 테크닉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며, 개인 드리블 능력과 슈팅 능력은 그 당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테크닉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안정환은 EPL에서 뛴 적이 없음에도..)
릴리앙 튀랑
아시아 선수 중에 정말 이런 선수가 있었나? 그는 나에게 델 피에로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중압감을 줬다. 나는 경기 내내 마치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착각에 빠졌었다. 분명히 델 피에로는 우리 팀인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글을 다 적고 골든골에 대해 찾아보니 마지막 골든골은 안정환 선수가 아닌 터키의 일한 만시즈입니다.
한국과 이탈리아전이 끝나고 나흘 후 치러진 터키와 세네갈의 8강 경기에서 연장 전반 3분 골든골을 성공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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